<칼럼> 서 박사의 남한산성 산책로

서정욱 광주뉴스 국장(철학박사)

한국 보수 정당의 현주소

보수주의(保守主義)는 자신이 믿는 ‘가치와 전통’을 지켜가면서 ‘개혁(발전)’을 하려는 신념이나 혹은 세력을 말한다. 오늘날 보수가 지키려는 가치는 한마디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이다. 따라서 개인의 자유와 창의, 인권과 삼권분립, 그리고 경제정책에서는 ‘국가의 개입’보다는 ‘시장의 역할’을, 사상적으로는 올바른 역사관과 전통을 중시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보수라고 자처하는 세력들이 이런 보수의 가치와 철학을 망각하다 보니 안타깝게도 역사까지 내다보는 눈도 점점 멀어지다 못해 서슴지 않고 왜곡까지 하는 실정에 이르고 말았다.

급기야는 대한민국 보수정당의 ‘아이콘’이라 자처 하는 특정 보수정당은 시대정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마침내 내부진통(이전투구)결과, 인적쇄신으로 거듭나기는커녕 몇 갈래로 쪼개져, 그들을 지지한 국민들의 가슴에 대못까지 박고 말았다. 한국 현대사에서 보수의 가치와 품격이 최근 이렇게까지 심하게 훼손되고 폄훼되는 경우는 참으로 드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보수와 진보의 양립성

한편,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자면 보수와 진보는 과연 ‘양립 불가능’한 것일까. 지금까지 세계사의 큰 줄기와 맥은 이 두 축에 의해 갈라졌다가 또 시대정신에 따라 융합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이목을 끄는 점은 진보보다는 보수 진영의 ‘스펙트럼’이 더 강하게 작용하여 시대정신을 공고화시켰다고 해도 무리한 판정은 아닐성싶다. 왜냐하면 대다수 인간의 의식과 정신세계는 기술과 문명, 문화의 진보를 따라잡기에는 그 한계가 노정되어 있기에, ‘다수의 보수’는 ‘소수의 진보’를 포용과 설득을 통해, 혹은 제도적 장치를 고려해 점차적인 사회발전을 이끌어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본질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보수와 진보는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상보적 ‘양립 가능’으로 각각 존재해온 셈이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준은 또 시대상황과 그리고 각 개별 국가가 처한 사회구조적 변화와 변동에 따라 그 성격을 달리하기도 했다.  

추구하는 가치의 중요성

그 단적인 사례로 일반성에 따르면, 점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우파(右派)’를 보수, 급진적 방식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좌파(左派)’를 ‘진보(進步)’로 알지만, 탈냉전 이후 공산권에서 전개되어 왔던 상황을 놓고 보면 그러한 등식은 결코 성립되지 않았다. 과거 구소련을 무너뜨려 변화를 추구한 ‘글라스노스트’ 와 ‘페레스트로이카’는 진보적이었지만, 급격한 변화를 모색하는 좌파는 아니었다. 중국에서 자본주의적 개혁을 지향하는 세력들은 진보적이었지만, ‘공산당식 교조(敎條)’에 집착하던 세력들은 보수로 분류되었다. 이를 경우 진보인 우파도 있고, 보수인 좌파도 있다. 추구하는 가치의 내용에 따라 좌파-우파를 구분하는 것이, 오히려 변화의 과정을 중시하는 진보-보수의 구분보다 더 중요하며 의미도 크다고 볼 수 있다. 

진정한 보수의 품격

보수는 태생적으로 ‘수구(守舊)’가 아니다. 보수주의는 기본적으로 ‘현재에 없는 것을 추구’한다기보다는 ‘현재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지킬 것이 있고, 또 그것을 위해 스스로 투쟁할 용의가 있다는 자세를 일컫는 용어다. 그 대표적으로 내 가정을, 나의 ‘종교적인 신념’과 ‘신앙’을, 한 사회의 전통적인 가치나 체계, 또는 그간 축척해온 ‘업적’이나 ‘명예’ 등을 지키겠다는 것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켜야 할 것’을 가지고 있는 개개인들이 공동체나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그것을 지킬 각오와 용의가 있을 때, 이를 보수주의라고 일컫는다. 따라서 이런 보수의 가치가 내면으로 녹아 들 때, 비로소 ‘보수의 품격’으로 (인품과 인격)뿜어 나오게 된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조선의 대쪽 같은 ‘선비정신’을 기억하면 이해가 빠르지 않을까싶다.

보수주의 핵심적 가치

이런 면들을 취합해보면 개개인들에 기반을 두고 한 사회와 국가를 꾸려나가고자 하는, 정부가 바로 보수주의 정부(정권)가 된다. 지난 정부들이 이 노선을 분명히 하겠다며,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애걸복걸했다. 그래서 다수의 국민들은 보수주의 정부를 표방한 이들에게 지지를 보내 두 정부가 탄생한 배경이 되었다.

이같이 현재에 없는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스스로 가치 있는 것들을 지켜야 할 것을 생각하는 태도가 보수주의이고, 바로 이것이 사회질서의 토대라고 할 때, 또 다른 중요한 보수주의적 가치의 토대는 ‘자율성’이 된다. 가족제도의 자율성, 가정의 자율성, 종교단체의 자율성, 대학과 기업 같은 각종 전문 직업집단들의 자율성이 존중되며, 이들 사회 각 부문들이 각자 지켜야 할 것들을 스스로 지키고자 할 때, 그것이 모여서 보수주의적 질서를 이루는 토대가 된다. 이것이 2∼300년간 지난 지금도 또 이후의 미래에도 변치 않는 보수주의의 핵심적인 가치가 되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

보수와 진보는 정신분석학을 통해 적용해 봐도 결국은 ‘인간의 욕망’으로 귀결된다. 인간의 무의식적 세계에 내재된 본능에는 ‘현상 유지 욕망’과 ‘현상 변화 욕망’이 항상 내포되어 있다. 이는 사회 경제적인 측면에서 고찰해보면 점진적 변화 욕구와 급진적 변화 욕구의 속성으로 대변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보수와 진보의 철학적 해석은 차치 하더라도 인간이기에 충분히 이런 갈등은 있을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입장, 즉 사회학적 관점으로 접근해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는 사회 ’기능론‘과 ’갈등론‘으로 뚜렷하게 구분하여 나타나기도 한다. 전자가 보수라면, 후자는 진보에 해당된다. 그런데도 이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개인보다 사회구조의 영향력을 중시하는 거시적 관점이라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모두 사회발전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수와 진보라는 이 두 명제는 어느 나라든지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고 또 존재해야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말처럼 ‘인간은 사회적 혹은 정치적인 동물’이기 이전에, 아예 그렇게 창조되었다고 개인적으로 믿고 싶다. 아울러 현재 우리나라는 진보정권이 들어선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런 시점에서 건강한 보수 정당과 세력들이 철철 넘쳐나고 역할을 제대로 해줘야 이 나라가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거짓 사실에 대한 해석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 특정 보수정당과 또 스스로 보수 세력이라고 자처하는 세력들은 이런 보수의 핵심적 가치와 품격들을 제대로 인식이나 하고 있는지, 의심이 드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엄연한 역사적 사실(19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과 진실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그들의 작태는 급기야 망언과 망발도 모자라는지, 아예 개개인의 실존까지 포기한 정신질환 수준까지 이르고 말았다.

역사적 팩트(Fact)를 사실 아닌 해석으로 치환해버리는 당 수뇌부의 뻔뻔함과 무지함, 또 거기에 편승하여 덜 떨어진 춤이나 추는 최고위원 출마자의 그로테스크(grotesque) 한 액션은 <안톤 시나크>의 말처럼 참으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필자는 현시점에서, 이들에게 앞서 논의했던 시대정신,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신념, 자율성과 질서 같은 다소 복잡하고 추상적인 이론의 재정립까지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차라리 이번 기회에 가장 원초적인 ‘국민윤리’나 ‘도덕’교과서를 한 번 더 읽기를 권하고 싶다. 거기에는 국가와 민족 그리고 국민의 의무와 역할, 또 공동체적 정의가 무엇인지 틀림없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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