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한산성 철학산책

서정욱 광주뉴스 국장(철학박사)

칼을 잘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칼잡이 호칭’은 과거에는 백정이나 망나니 같은 하층민을 의미했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실력 있는 요리사나 의사 등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물론 그 단어의 이면에는 칼로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자부심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검(檢)과 검(劍). 한자는 다르지만 음이 같은 ‘검’이라는 글자 때문일까, 우리나라 검사(檢事)들 역시 스스로를 칼에 비유한다. 수사실력이 출중한 특수통 검사를 칼잡이라 부르고, 강단 있는 수사로 이름난 강골검사는 수사원칙을 칼에 비유해서 말하기도 한다. “칼을 찌르되 비틀지 마라. 칼에는 눈이 없다 잘못 쓰면 자신도 다친다.” 검사의 칼은 지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으며 자신의 유·불리를 떠나 사용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 말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칼에 대한 그들의 소신과 철학(哲學)이 소수 수뇌부들에 의해 철저히 이해관계로 얽힌 자객(刺客)으로 전락한 것인지, 아니면 더욱 더 조직쇄신에 필요한 칼갈이를 위해 예리한 숫돌을 찾아 헤매는 ‘신(新)노마디즘’쪽으로 ‘터닝 포인트’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근 보여준 그들의 행보는 매우 견고해 보였다.

그래서일까 최근 검찰의 그 칼끝 행보를 두고 논란이 최고조에 달하자, 급기야는 ‘광장정치’가 부활된 느낌이었다. 장관 후보자를 향해서 그 칼을 빼든 지 한 달. 그 다음에는 장관으로 임명된 자에게 겨눈 그 칼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지도 벌써 또 한 달이 지났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장관은 전격 사퇴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을 두고 검찰개혁에 대한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라는 말과 함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포스트 조국정국은 지금까지는 오리무중에 가깝다. 워낙 진영 논리의 민감한 사안이라 그럴까. 집권 당·정·청은 검찰개혁의 가속화에 올인 한다지만, 그 반대편의 세력들은 그 속내가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지난 촛불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검찰개혁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를 우리는 2019년 대한민국 검찰의 형태를 통해 깨달았다며, 현재 대한민국 검찰은 매우 위험하다. 자신들에게 잠재적 위험이 될 것 같은 조국 섬멸을 위해 대통령과 국회도 무시하는 검찰의 칼끝은 결국 우리 공동체를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칼날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언론에 대해서도 “이번 사태를 통해 그들은 권력의 하이에나나 다름없는 대한민국 언론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여줬으며, 또 조국장관의 진실을 밝힌다는 미명하에 우리 조국(祖國)을 병들게 했다”고 말했다.

반면, 조국장관을 반대하는 세력들은 문 대통령의 취임사 전문에서 밝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연설문을 쉴 새 없이 인용하며, 조국 가족이 연루된 의혹사안을 두고 이것이 과연 평등, 공정, 정의의 가치냐고 끊임없이 혹독하게 비판하며 처벌을 요구했다. 과잉수사인가 아니면 정당한 절차인가 또 조국수호인가 아니면 조국반대인가. 이 형국에서 강자는 누구이고, 약자는 누구인가 2019년 여름에서 가을을 관통하는 이 뜨거운 논쟁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매우 강렬했다.

어찌되었던 이제 칼은 다시 넣을 수 없게 되었고, 칼을 겨눈 사람이건 겨눔을 당한 사람이건 그 칼에 다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공교롭게도 양쪽 모두 광장에서 힘을 받았던 존재들이기 때문에 사뭇 비극이 되어버린 이 현실에 온 국민이 시선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칼의 방향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던 차 조국장관이 사퇴를 전격 선언했다. 이를 두고 양 진영의 반응 역시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다시 갈라졌다. 온 나라를 펄펄 끓게 했던 조국 대한민국이 조국의 사퇴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당사자들이나 양 진영들은 故김광석의 노래 가사처럼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 역대 정권들은 통치 권력의 수단으로 속칭 칼잡이들을 이용했다. 그리고 칼잡이 역시 이용당한 만큼, 정권 말기엔, 어김없이 차기 정권에 대한 충성심으로 그 ‘치욕(?)’을 되갚아 줬다. 이처럼 정치권력과 검찰은 ‘적과의 동침’속에 ‘순환 논리의 오류’라는 사생아를 지속적으로 낳았지만, 결코 서로 피임하지 않았다. 그 결과 2019년 대한민국 여름에서 가을을 관통하는 이 지점에서, 조국의 등장과 퇴장은 우리들에게 ‘진정한 칼잡이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보라는 커다란 숙제를 던져준 셈이다.

지난 서초동 촛불문화제와 광화문 집회의 성격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지만, 그래도 공통분모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래도 희미한 기억의 저편에서 떠올려 보면, 그들에게 조국은 싫어도 진정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면 ‘칼잡이개혁’까지 반대하지 않을 것이리라고 속단해본다. 그래서 오랜만에 필자의 예상이 딱 맞아 떨어져 이번만큼은 산 보람을 한 번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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