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한산성 철학산책

서정욱 광주뉴스 국장(철학박사)

지난주 종영된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지금도 단연 화제다. 최종회 28.4%라는 시청률은 비지상파 역대최고를 경신했다. 지금까지 남녀간의 ‘달달한 사랑’을 주제로 한 멜로물들이 안방극장의 높은 시청률을 자랑했다면, 이번 불륜 막장드라마로 획기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16화 내내 집착이 강한 여자들과 찌질한 남자들이 갈등하며 빚어내는 긴장과 공포는 장난이 아니었다. 심리극 스릴러답게 한 장면 한 장면 마다 시청자로 하여금 오금을 저리게 만든 것도 시청률을 높이게 만든 요인이리라.

일반적인 논평에 의하면 부부의 세계가 정말 질리게 질긴 이유는 남녀 모두 자신의 행동 패턴을 반복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둘 다 자신의 성격과 습관이 만드는 궤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보니 계속 서로에게 매달리고 괴롭히고 파멸을 자초하면서도 끊지를 못하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불륜은 대체적으로 높은 ‘관용’을 보인다는 통계수치가 있다. 2018년 영국 BBC가 ‘주요 국가 관용지수’를 조사한 결과 27개국 중 한국은 26위(20%)를 차지했다. 27개국 전체 평균 46%에 한창 못 미치는 점수다. 그런데도 불륜만은 예외라는 사실은 지금까지 우리 영화나 드라마의 60% 이상은 어떤 형식이든 불륜을 극 전개의 주요 장치와 핵심소재로 다뤘기 때문일 것이다.

불륜은 의심의 여지없이 반윤리적이며 비도덕적이다. 하지만 언제랄 것도 없이 인류 아니 그리스 신화 신들조차도 불륜이라는 일탈적 행위가 ‘공공의 담론’으로 포섭되어왔다.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 또한 남편 헤파이스토스를 속이고 불륜을 저질렀다. 아프로디테는 애인에게서 마음의 위로를 받았지만 남편 헤파이스토스가 다른 신들을 불러 모아 연인에게 복수를 하고 만다. 이렇듯 고대 그리스 신들조차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 불륜인데 지상의 인간이야 어떻겠는가? 베를린 홈볼트대학 교육학과의 레나테 발틴(R.Valtin) 교수의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에 거주하는 여성 가운데 1만5,000명 이상이 유부남을 애인으로 두고 있다고 한다.

유교문화와 가부장제의 엄숙함이 불륜의 도덕성을 강조했다면 불륜을 다루는 영상 콘텐츠는 감춰진 자아, 은폐된 현실을 폭로하는 기능을 한다. 무엇보다 현실은 불륜에 대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단죄보다는 갈등 속의 현실, 나아가 은근한 선망이 된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인간의 이중적 성격을 둘러싼 모순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정치판의 행보를 들여다보면 이 드라마 ‘부부의 세계’와 사뭇 닮은꼴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양쪽 다 중독성 있다는 특이점 때문이다. 갈등이 정점에 오를수록 드라마 시청률이 올라가듯 정치 인사들의 말이 거칠어질수록 인터넷 조회수도 높아진다. 물론 다른 공통점도 있다. ‘그래도 내 편’이라는 미련 때문에 음모론과 막말로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극우 유튜브를 끊지 못하는 정치인들과 ‘속이는 남자’와 함께 사는 게 스스로를 속이는 것 같아 괴롭지만 그래도 ‘남편 없는 여자’라는 소리는 듣기 싫어 손톱 물어뜯는 극중 선우의 행동은 둘 다 매우 흡사하게 닮아 있다.

또 헤어지냐 고쳐 쓰냐를 놓고 이혼과 재결합 사이에서 속을 끓이는 극중 예림과도 묘하게 닮은 구석도 있다. 이런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은 과거 ‘완벽했던(?)’ 과거를 잊지 못하고, 여전히 ‘선거의 여왕’ 전성시대를 놓고 갈등의 연속이다. 그녀와의 속 시원한 아름다운 결별이냐, 아니면 다시 수선해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느냐에 고심 중인 것처럼.

뿐만 아니라 여기에 편승한 또 다른 무리들은 지난 4.15 총선 주술정치 논란의 중심에 서있기도 하다. 이들은 “유튜브에서도 연일 부정선거라고 마구 떠드는데 왜 시청하지 않느냐”고 동료의원에게 보챈단다. 부부의 세계만 보지 말고 극우 유튜브도 열심히 보라는 뜻이다. 이를 두고 같은 당 소속 동료의원들조차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한탄한다. 참으로 부부의 세계만큼 징하고 질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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