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촌면 지명의 유래

퇴촌면은 경기도 광주시의 면이다.

퇴촌면에 대한 지명의 유래는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특히 태종 이방원의 총애를 받았던 조영무(趙英茂)와 관련이 있다.

그가 정계를 은퇴하여 옛 광주의 동쪽 마을인 광동리에서 말년을 보내면서 호를 퇴촌(退村)이라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바로 그것이다. 

조영무는 1338년 함경도 영흥군 출신의 고려말 조선초의 무신이다.

그는 조선왕조 오백년 역사상 최초의 무관 출신으로 정승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처음엔 이성계의 사병 중 하나였으나 그는 뛰어난 무예 실력으로 이성계의 눈에 들어 심복으로 활약하게 된다.

1392년에는 이방원과 모의하여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격살하는 데 주동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이성계를 추대하여 조선 개국의 공을 세우고 3등 개국공신에 책록된다.

이렇듯 이성계의 심복이었던 그였지만 두 차례의 왕자의난 때는 이방원의 편에 서서 이성계에게 칼을 겨누게 된다. 

이에 이성계는 크게 격노하여 그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리기도 한다.

이후 이방원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마침내 정승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평민 출신의 병졸로 시작해 정승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걸 보면 그 총애가 얼마나 대단했던가를 엿볼 수 있다.

이방원의 총애는 사후에도 이어져 그의 자손들이 송사와 물의를 빚었을 때도 특별히 배려해 주었다고 한다.

조영무는 말년 병든 몸을 이끌고 낙향하여 호를 퇴촌(退村)이라 하고 이곳 광주에서 조용한 삶을 살다 1414년 향년 71세의 나이로 그의 치열했던 생을 마치게 된다.

그는 광주군 퇴촌면 광동리에 안장되었다.

이에 이방원은 친히 빈소에 임하여 충무(忠武)라는 시호를 내리고 애도의 뜻으로 사흘 동안 조회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퇴촌면의 10개 법정리 중 일부 법정리의 지명유래 또한 흥미를 자아내게 한다.

먼저 ‘우산리’는 마을 주위에 있는 산의 형세가 마치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 '우산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도마리’는 마을의 고개에서 사람을 괴롭히는 여우가 살았는데 한 도공이 여우를 죽이자 그 죽은 여우의 혼이 다시 사람을 괴롭혔다고 한다.

이에 그 혼을 누르기 위하여 질(陶,도)로 말(馬,마)을 만들어 여러개를 고개에 세웠다고 한다. 

여우의 혼은 사라졌고 그곳을 '도마리'(陶馬里)라 하였는데 그 후에 '道馬里'라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수리’는 경치가 좋고 인심이 후한 곳으로 마을 주민들이 모두 '근심 없이 산다'고 하여 '무(無,없을) 수(愁,근심) 리(里.마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오리’는 이 마을 한가운데 커다란 오동(梧桐)나무가 한 그루 있어 그 나무의 상태를 보아 일 년의 길흉을 점쳤다고 하여 '오동나무골'이라 하다가 '오(梧) 리(里)'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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