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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선의 문화칼럼> 숭렬전(崇烈殿)의 제향(祭享)

기사승인 2020.07.02  21: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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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은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유은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출강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졸업
전) 국립국악원 연구실장
전) 국악방송 본부장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입학하던 첫해, 난 성균관대학교 대성전에서 열린 문묘제례 춘계석전(春季釋奠)에 참여했다. 3월 2일(목요일)에 입학하여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 연습 후 곧 바로 일무(佾舞-종묘제례나 문묘제례 때 추어지는 춤으로 일렬로 늘어서서 추는 춤이다. 제례의 대상에 따라 인원수가 조절되는데, 천자(天子)의 경우 8명씩 8줄로 총 64명이 춘다) 일원으로 참여한 것인데, 이를 시작으로 나는 종교와는 상관없이 참 많은 사당(祠堂)을 다녔다.

그 첫 시작이던 날은 오전 내내 비가 오락가락하여 일무 의상인 홍주의(紅紬衣)속에 받쳐 입은 흰색 체육복 바지가 붉게 물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만 해도 이런 의식에 사용되는 의상의 옷감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제례 역시 비가 오나 눈이오나 쉼 없이 진행되는 행사이기에 비 오는 날에도 제향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때는 문묘제례가 무엇인지 일무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앞에서 시범적으로 행하는 일무동작을 따라 했었다. 그것은 다시 5월 첫 주 일요일에 행해지는 종묘제례와 9월 첫 째 주 일요일에 행해지는 추계석전(秋季釋奠)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3년 동안 총 9번의 의식에 일무를 담당 했었다. 때문에 나에게 이런 ‘사당(祠堂)’은 매우 친근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래서 한껏 눈이 높아졌는지도 모르겠다. 사당을 보는 눈이 말이다.

비교적 이른 아침 찾았던 ‘숭렬전(崇烈殿)’을 서울의 종묘나 대성전 규모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나름 생각했던 것 보다 자그마한 규모에 적잖이 놀라긴 했다. 하지만 최근 복원공사를 통하여 새로운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숭렬전은 백제 시조 온조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원래 충청남도 직산에서 창건했었다고 하는데 1464년(세조10) 정유재란 때 불에 소실된 후 1625년(선조36)에 남한산성에다가 재건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2018년 보수공사를 시작하여 2019년 10월 상량식을 가지면서 오늘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이름도 원래는 온조왕묘(溫祚王墓) 혹은 온조왕사(溫祚王祠)라고 하였으나 조선 정조시대에 숭렬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숭렬전임을 알리는 홍살문에 들어서니 바깥 담장에 세 칸으로 세운 외삼문이 나타나고 그 중앙에는 솟을 대문이 우뚝 솟아 있다. 빼꼼이 열려있는 우측 문으로 들어서니 ‘강당'(원래 있던 강당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새로 복원되었다)이 보이고 다시 본전으로 향하는 내삼문(이 역시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복원)을 지나니 비로소 본전(本殿)이 나타난다.

본전 정면에 있는 것이 ‘숭렬전(崇烈殿)’인데 여기에 백제시조인 온조왕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숭렬전을 바라보며 우측에 있는 건물은 ‘동재’인데 이곳에는 이서장군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그리고 동재 건너편 쪽에 있는 ‘서재’는 재실(齋室)로 사용 중이다.

이곳에는 제향을 지내기 위한 여러 집기 등과 함께 최근 ‘환안식(還安式) 때 사용한 두 대의 가마도 보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숭렬전 옆에는 약수터가 있다. 최근까지도 이곳의 약수는 음용(飮用)이 가능했다고 하나 지금은 마실 수 없어서 거의 폐쇄해 놓은 상태였다.

이곳에서는 매 년 음력 2월과 8월 두 차례의 제향이 열리는데 그 외에도 매 달 음력 초하루와 보름날에는 ‘봉심(奉審)’이 행해지고 있다. 참 다행스런 일이다. 특히 광주시장을 비롯한 광주시의 여러 기관단체장이 초헌관(국가의 제사에서 처음으로 술잔을 신위에 올리는 직임으로, 대개 정1품의 관원이 맡음), 아헌관(두 번째로 잔을 올리는 일을 맡은 제관), 종헌관(제향에서 마지막 술잔인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제관)등이 되어 제향을 이끌고 있고 광주시의 유림 어르신들이 제대로 격식을 갖춰 조상에 대한 예를 다하고 있으니 그 의미가 잘 유지되고 있다고 본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제향(祭享) 이 시대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왜 꼭 제향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의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제향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고 앞으로도 어떤 형식으로든 계속 이어가야 할 전통인 것이다. 이런 의식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들의 뿌리를 기억해 보고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더 낫게 살기 위한 자성의 시간을 갖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각자의 종교가 있고 종교의식을 통해서 개개인의 삶을 반추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런 제향은 우리의 근본을 다시금 되새기고 더 큰 미래를 향한 우리민족 고유의 하늘과 소통하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이유와 의미를 지키기 위해서 오늘도 유도회 어르신들은 다시금 봉심을 준비하고 다가 올 8월 제향을 일찌감치 준비하고 있다고 본다.

온조왕과 숭렬전에 대한 이야기는 비록 '남한산성'이라는 이름에 가려 제대로 된 역사적 인물과 장소로서의 추앙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을 시작으로 광주시를 대표하고 백제문화를 대표하는 21세기형 문화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단초가 되는 것 같아 숭렬전과의 만남은 다시 또 기쁘다.

광주뉴스 gin5000@naver.com

<저작권자 © 광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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